언젠가 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나는 그녀와 춤을 추면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스로의 테크닉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테크닉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너무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요.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긴장이 풀린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 춤을 시작할 때에는 단순했어요. 그냥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수업을 더 듣다 보니 몸에 익숙하지 않은 어려운 것들을 많이 해야 했어요. 점점 스트레스를 받았고, 어느새 춤이 재미없어졌어요.”

그녀의 고충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그녀를 돕고 싶었다.

“혼자서 테크닉을 연습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상대와 춤을 출 때에는 테크닉을 걱정하지 말아요. 대신 파트너에게 집중해요. 그의 움직임과 음악을 들어요. 남자도 똑같이 이렇게 해야 해요. 그게 우리가 커넥션을 유지하면서 함께 춤을 즐기는 방식이에요.”

나중에 우리는 다른 여자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 몇몇은 마찬가지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안쓰럽게도 그들은 즐기기 위해 땅고를 시작해놓고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우리는 흔히 ‘땅고는 몸으로 하는 대화’라고 말한다. 대화를 할 때 우리는 말을 함과 동시에 상대의 말도 듣는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그에 따라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말을 할지 조절하게 된다. 상대의 반응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하는 말은 혼잣말에 불과하다.

땅고도 마찬가지다. 춤을 추면서 우리는 내 파트너의 반응을 들어야 한다. 내 움직임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껴야 하고 그에 맞춰 내 움직임을 조절해야 한다. 실제 대화와 차이가 있다면 땅고는 차례가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들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의식의 흐름처럼 동작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 집중이 방해를 받는 순간 파트너와의 커넥션이 깨지고 에러가 생기게 된다.

땅고 수업에서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수업을 받는다. 그것은 패턴과 테크닉이다. 듣는다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라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면 그들의 몸의 움직임은 볼 수 있지만,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듣고 있는가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 힘들다.

또한 듣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르치고 배우기도 어렵다. 어떤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고 난다. 이런 사람들은 파트너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움직이는 법을 훨씬 쉽게 터득한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의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그들은 파트너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항상 춤이 뭔가 어긋나 있다고 느끼게 된다.

어둠속에서 추는 춤은 자신감을 빼앗아 간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걸 기준으로 상황을 컨트롤하고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쉽게 테크닉에 의존하려 한다. 혼자서 동작을 잘 하게 되면 파트너와도 잘 될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만약 두 사람의 균형이 깨지면 우리는 몸을 잘 컨트롤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 자신의 테크닉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파트너에게 귀를 기울일 수 없게 되고, 결국 서로의 교감은 멀어지게 된다.

 
 
밀롱가에서 만난 그 남자는 에너지가 크고 다양한 패턴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춤을 많이 추고 싶어 조바심을 냈지만, 많은 여자들에게 승낙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개인레슨을 통해 그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화이가 그와 춤을 추었는데, 그의 문제는 여자의 반응을 무시하고 혼자서 자기 말만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원하는 걸 여자에게 이야기 할 때는 여자가 이해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녀가 이해를 하더라도 그녀의 반응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어요. 여자마다 반응이 다를 것이고, 같은 여자라 하더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항상 파트너를 듣고 있어야 합니다. 여자한테는 그녀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게 무언가를 하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와 연습을 하면서 몸으로 듣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그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춤은 달라졌다.

듣는다는 것은 인내심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보상은 우리에게 내 파트너와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마법과도 같은 느낌으로 돌아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새로운 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춤을 배우기 어렵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가 땅고에 매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