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순식간에 땅고에 푹 빠졌다. 밤에는 잠이 들기 전까지 땅고 스텝을 떠올리곤 했다. 여자의 발은 어디로 가야하고 내 발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 조합은 끝이 없어 보였고 나를 완전 매료시켰다.

이후 여러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받았다. 가장 고전적인 수업 방법은 스텝을 보여주고 그걸 따라서 연습하는 동안 포인트를 짚어 주는 것이었다. 좀 더 젊은 세대의 선생님들은 패턴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좀 더 체계적으로 춤을 추게 되고 나아가 스스로의 스텝을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어떤 방식이든 땅고를 배우는 방법은 바로 스텝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수년간을 배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패턴들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춤은 점점 재미를 잃어갔다. 답답해진 나는 혹여 새로운 영감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여러 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2006년 타이페이 땅고 페스티발에서 하비에르 로드리게스와 안드레아 미쎄를 만났다.

하비에르와 안드레아는 둘 다 이미 유명한 스타였지만 그 해 처음으로 파트너로서 일을 시작했다. 화이와 나는 10개의 그룹 수업에 다 참여했다. 그들의 가르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스텝을 보여주는 대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떤 경우에는 클라스의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만 늘어놓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너무 장황하다고 불평했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들에 흥미를 가졌다. 그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 한 것은 바로 밀롱가에의 행동에 관해서였다.

하비에르와 안드레아는 사람들이 밀롱가에서 어떻게 춤을 청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거절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밀롱가 내에서 춤의 레벨을 향상시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플로어 안에서 남자는 다른 남자들과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남자들이 서로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밀롱가의 론다가 잘 흘러가고 서로 어우러진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또한 밀롱가가 춤만 추기 위한 장소가 아니고, 모든 딴다를 다 추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춤을 추지 않고 있을 때 어떻게 혼자 즐길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밀롱가를 단순히 땅고 음악이 나오는 댄스파티 정도로만 인식하던 우리에게 하비에르와 안드레아는 그 이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들은 스텝을 가르칠 때에도 몸을 움직이는 테크닉보다 올바른 마음가짐과 인텐션을 갖는 것을 먼저 가르쳤다. 땅고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들은 춤을 출 때 자신감과 침착함, 세심함, 배려와 존중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마음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올바른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춤을 추면 자세와 동작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상대방에게 더 마음을 열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동작을 하면 두 사람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더 자유롭게 춤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마음상태가 바르지 않으며 우리의 몸은 스텝을 따라 근육을 움직이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우아함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후에 나는 하비에르와 안드레아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런 내용들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자라는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땅고 댄서들의 태도 역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밀롱가를 가면, 그들의 선배들이 하는 행동과 매너를 보고 경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런 것들을 사교활동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스텝과 테크닉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그들의 춤은 보고 따라서 출 수 있지만, 그들의 심리와 매너까지는 자동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비에르와 안드레아는 땅고라는 빙산의 보이지 않는 숨은 몸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땅고를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배우는 법을 알려 준 것이다.

화이와 나는 하비에르와 안드레아가 가르쳐 준 내용을 가지고 한국에서 시도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우리의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땅고를 배우는 데 있어서 어떤 부분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이 몸의 테크닉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2007년부터 하비에르와 안드레아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워크샵을 진행했다. 이것은 이후에 서울 땅고 페스티발로 발전했다. 하비에르와 안드레아는 그 페스티발의 중심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한국 및 아시아의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이 땅고의 정신을 전달해주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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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인 2012년, 안드레아는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모두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하비에르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를 잃었다. 우리 모두는 뭔가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한동안 멍했었다. 하비에르는 차츰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워크샵 투어를 시작했다. 그의 수업은 여전히 흥미롭고 독특했지만, 안드레아 없이는 예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

하비에르와 안드레아의 수업을 돌이켜 보면 하비에르는 늘 재치 있고 현명했다. 그는 모두를 웃게 만들고 또 집중하게 만들었다. 안드레아는 고등교육을 받은 수재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었다. 그녀는 언제나 우아한 모습이었지만 말수가 적었다. 어찌 보면 차갑고 도도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주로 하비에르의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했다. 가끔 그녀의 생각을 추가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하비에르의 생각과 방식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라 느꼈었다.

안드레아가 우리의 곁을 떠나고 나서야, 우리는 서서히 그녀가 하비에르만큼이나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땅고를 그녀 조국의 유산으로써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문화의 하나로써 전파되기를 깊게 소망했었다. 그녀는 비록 수업에서 말은 별로 없었어도 그녀의 존재감와 고결함만으로도 땅고를 배우고 춤추는 우리에게 큰 영감과 영향력을 주기 충분했었던 것이다.

하비에르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안드레아가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한번은 하비에르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안드레아의 영어를 옆에서 듣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들어와 있었어. 지금 수업을 하면 안드레아의 영어가 내 안에서 저절로 나와.”
안드레아는 지금 여기 없지만, 동시에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안드레아를 추모하며…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부디 평안히 쉬세요.